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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가 수주 3.9% 불과… 몸집만 키우고 내실은 잃었다

입력 : 2015-01-21 06:00:00 수정 : 2015-01-2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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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잘 짓는게 능사 아니다
범정부적 지원대책 시급
1965년 9월 현대건설이 태국에서 파타나∼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했다. 우리 건설사상 첫 해외 수주 기록이다.

당시 정주영 회장이 진두지휘한 현대건설은 일본 등에서 온 30여개의 선진업체와 당당히 경쟁해 공사를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당시만 해도 근로자들이 태국으로 출발할 때 TV에서 생중계할 정도로 국내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또 이때 입증된 기술력으로 현대건설과 한국 건설업체는 해외 수주에 속속 성공하며 국부를 늘렸다.

지금은 상황이 어떻게 변했을까. 2013년 4월 한국은 터키 정부의 300억달러 규모 원전 건설 및 운영 입찰에서 일본과 경쟁하다 고배를 마셨다. 우리 건설사는 기술력 등 여러 측면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터키는 풍부한 정책자금과 저금리 등 일본의 유리한 금융 경쟁력에 합격점을 줬다.

한국의 해외건설이 50년 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정책금융 지원 부족과 저가 수주 등으로 우리 해외건설은 외형은 키웠지만 내실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건물 빨리, 잘 짓는 것만이 능사인 시대는 갔다. 해외 건설의 양적·질적 동반성장을 통한 재도약을 위해서라도 범정부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일 국토교통부와 해외건설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해외건설 수주액이 660억달러로 2010년(716억달러)에 이어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실적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한국의 해외건설 이면을 들여다보면 부가가치가 매우 낮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13년 말 현재 해외건설 수주에서 고부가가치 영역인 투자개발형이 3.9%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일반도급형이 절대다수다. 도로, 신도시 개발 등 투자개발형 사업의 수익률은 단순도급형의 2∼3배다.

이런 상황은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 부족 등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투자개발형은 자금조달 능력이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다.

건설사가 직접 사업개발, 지분투자, 제품구매, 설비운영 등 사업 전 과정에 참여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산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의 참여와 지급보증 등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그런데 국내 정책금융기관의 투자개발형 사업에 대한 지원은 2012년 14.4%에 그쳤다.

2012년 기공한 대우건설의 베트남 하노이 ‘스타레이크시티’의 조감도. 이곳은 국내 건설사가 자체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직접 해외 신도시 개발 기획부터 금융 조달, 시공, 분양에 이르는 전 과정을 융합한 최초의 투자개발형 사업지다.
대우건설 제공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엔 어느 나라나 정부주도 개발보다는 민자복합 사업을 많이 발주하고, 이런 공사를 따내려면 자금동원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며 “우리 건설사가 외국의 민자발전 분야 등에 진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책자금과 국제PF(프로젝트파이낸싱)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단순도급 위주의 수주는 수익성 악화와도 직결된다. 한국의 해외건설 외화가득률은 2012년 현재 31%로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주력산업과 비교해 턱없이 낮다. 

우리 건설사의 핵심 기술력 부족도 큰 문제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주액 중 78%를 채운 플랜트 공사의 경우 원가가 엔지니어링(설계)이 9%, 플랜트 기자재(구매조달)가 58%, 시공이 33% 등으로 구성되는데, 2009년 기준 플랜트 기자재 국산화율은 평균 61.5%, 실제 투입되는 국산 플랜트 기자재 비율은 40%에 그쳤다.

플랜트 중심의 수주 편중 현상도 시급히 개선해야 하는 과제다. 발전 플랜트, 석유 정제 등과 같은 산업 설비의 발주가 주로 진행되는 플랜트는 한때 우리의 수주 텃밭이었던 중동에서 발주되는 게 많다.

그러나 한 곳에 집중된 수주전은 우리 업체 간 과당 경쟁에 따른 저가수주 관행을 불렀다. 2009년 2월 한 건설사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스 프로젝트를 입찰가 18억달러보다 30%나 낮은 13억달러에 수주한 게 대표적인 경우다.

최근에는 중동 정세가 더 불안해졌고, 유가까지 급락해 우리 건설사는 더 큰 시련을 예상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이 정세 불안과 저유가 장기화에 따른 재정 수지 악화에 대비해 석유화학, 플랜트 등의 발주를 줄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와 일부 건설사는 이런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아직 올해 수주 목표액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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